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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특종사진 50년
한 컷 한 컷… 격동의 현장서 역사를 담았다

사진은 역사의 순간을 있던 그 모습 그대로 증언한다. 사진 한 장은 100줄의 기사보다, 100마디의 웅변보다 정확하다. 한국일보에 몸을 담은 사진기자들이 포착한 명장면들을 다시 본다. 국내외 사진보도전서 수상한 작품들이다. 사진기자들은 이 한 컷을 필름에 남기기 위해 최루탄이 자욱한 거리에서, 첩첩산중에서, 역사적인 현장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낮과 밤을 지샜다

 

아! 나의 조국 1987. 6.10 AP 선정 20세기 100대 사진 선정 고명진기자
6·26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부한 문현로터리에서 웃옷을 벗은 한 시민이 "최루탄을 쏘지 마라"고 외치며 다탄두최루탄을 발사하는 경찰에게 달려가고 있다. 한국 민주화의 상징적인 이 사진은 1999년 AP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진에 포함됐다. 사진의 주인공은 찾아지지 않았다.

 

이동수군의 분신 1986. 5.20. 제 18회 한국기자상, 권주훈 기자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거행된 5월제 개막식 도중, 농대 원예과 이동수군이 학생회관 4층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채 '미제는 물러가라''경찰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투신하고 있다. 분신자살은 이후 대학가에 열병처럼 퍼졌다. 이 사진은 계엄령 하에서 보도되지 못하다가 외신으로 먼저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김영삼 前 대통령 페인트 달걀 봉변 1996. 6. 3, 제 31회 한국기자상, 고영권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해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던 중 붉은 페인트가 들어 있는 달걀 세례를 얼굴에 맞고 있다. 순간적인 포착이어서 김 전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은 아직 사태를 느끼지 못한 상태다.

 

기적의 소녀 1972.12.2, 제 6회 한국기자상, 1972년 세계보도사진전 은상, 박태홍 기자
서울 고아화문의 시민회관 대화재 당시 4층 회전창틀에 다리가 낀채 매달려 있는 조수아양을 소방관이 구출하고 있다. 이 사진은 계엄 하에서 보도되지 못하다가 2개월 후에야 햇빛을 보았다. 박 기자와 소방관은 이후 이 소녀의 후견인 역할을 했다. 조 양은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아기 반달가슴곰1978.10.12, 16회 보도사진전 동상, 한융 기자
바위 틈에서 나뭇가지로 장난질을 치던 반달곰이 셔터 소리를 들었다. 순간적을 긴장하면서 30m 전방의 위장한 카메라쪽을 바라봤다. 살이 통통하게 쪄 귀여운 반달가슴곰의 생태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컬러 필름에 담긴 순간이다. 지리산 해발 900m의 무명 능선에서 찍었다.

 

낙천 분풀이 폭력 2000.2.18, 제 32회 한국기자상, 제 32회 한국기자상, 손용석 기자
공천에 탈락한 한나라당 김호일(왼쪽.마산 합포)의원이 18일 오후 당무회의 직후 서둘러 집무실로 향하는 하순봉총장(오른족)을 ?아가 주먹과 발길길로 난타하고 있다. 김의원이 청년당원의 제지를 뚫고 하총장을 후려치고 왼손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 뒤(사진 가운데) 오른발로 사타구니를 걷어타고 있다.(사진 아래)

 

다대포항의 이별 2002.10.15, 제 39회 보도사진전 금상, 최흥수 기자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북한 여성응원단이 다대포항에서 만경봉호에 오르며 눈물을 머금은 채 손을 흔들고 있다. 이들을 뒤따라 온 노인이 철조망에 올라가 한반도기를 흔들며 배웅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첫 증언 1992. 1.13. 제 29회 보도사진전 특별상, 신상순 기자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벌어진 '정신대 피해보상 요구 시위'에서 군대위안부 출신 김학순 할머니가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 사진은 역사의 뒷전에 숨겨져 있던 군대위안부 문제를 우리 사회에 알린 첫 보도사진으로 평가받았다. 고 김학순 할머니는 첫 증언자였다.

 

화염병에 불붙은 전경 고명진기자 - 1987년 23회 보도사진전 금상 , 1986년 4월 30일 중앙대
민민투결성식을 마친 중앙대 학생들이 후문으로 진출,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이 경찰의 몸에 맞아 불이 붙어 뒹굴고 있다.

 

석등도 쓰러지고 이종철기자 - 39회 보도사진전 가작, 1994년 4월 11일
11일 하오 '개혁의회'승려 7백여명이 총무원 건물로 다시 진입하려다 저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여 대웅전 옆 석등이 넘어졌다.

 

이 아픔 누가 아랴 최종욱기자 - 28회 보도사진전 동상, 1997년 8월 9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나미츠힐에 처참하게 부서진 기체를 내려다보며 오열하고 있다.

 

캄보디아 훈할머니 김민규기자 - 1998년 8월 4일
캄보디아에 버려져 조국을 잊고 살았던 종군위안부 출신 훈할머니가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이남이' 라고 써진 종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훈할머니는 본지의 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로인해 조국을 되찾게 되었다.

 

불꺼진 회담 박서강기자 2001.11.8
제 6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위해 8일 오후 금강산 호텔에 도착한 홍순영(왼쪽)남측 수석대표와 북측 김령성 단장이 북한의 어려운 전력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정전이 되자 촛불을 켜놓고 환담하고 있다. 제6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위해 금강산호텔에 도착한 홍순영(왼쪽) 남측수석대표와 김령성 북측 수석대표가 갑작스런 정전으로 촛불을 켜놓고 환담하고 있다.

 

린다 김 독점 인터뷰 김희원기자 2000년 5월 8일
린다 김이 8일 밤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 응접실에서 본보 기자를 만나 이양호 전 국방장관과의 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린다 김은 비교적 건강하고 분명한 태도로 질문에 응했다. 최초로 그와의 면담 인터뷰했었다.

 

뒤늦은 귀대신고 왕태석기자 -31회 보도사진전 특별상, 1994년 10월 25일
국립묘지 전사잔 명단에 올라와 있던 조창호 소위가 포로로서는 최초로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들어왔다. 25일 層?통합병원에서 문병온 후배인 이병태 국방부장관에게 43년만의 귀대신고를 하고 있다.

 

학우의 분노 고명진 기자 - 1987년 세계보도사진전 3위, 1987년 6월 15일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입원중이 15일 하오 3시 연세대에서 최루탄 추방 궐기 대회가 열려 민주광장에 4천여명의 학생.시민들이 모인가운데 진행되었다. 집회가 끝난 후 많은 학생들은 교문밖진출을 위해 미리 대치돼 있던 진압경찰과 밀고 밀리는 과정을 번복하였다. 교문주변의 담벽철책을 뜯어내어 방석망을 쳐놓은 전경들에게 교련복을 입은 학생 1명이 쇠막대기를 휘두루며 학우를 살려내라고 울부짖고 있다.

 

시민에게 뺨맞는 전경환 권주훈 기자 -25회 보도사진전 금상, 1988년 3월 30일
검찰이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를 해외 재산도피 및 공금횡령등의 죄목으로 소환하자 국내외 보도진 150여명이 청사 마당에서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던 중 한 시민이 전경환씨의 뺨을 때리고 있다. 당시 34세의 젊은 회사원인 김인철씨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전경환씨의 소환소식을 듣고 분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며 검찰조사에서 밝혔다.

 

의령 총기 난동 이기룡기자 -19회 보도사진전 금상, 1982년 4월 28일
의령 우순경의 총기난동으로 12명의 희생자를 낸 문두출 씨의 노제(路祭)에 어머니와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문씨의 손자가 제주(祭主)가 되어 잔을 올리고 있다.

출처 : [기타] http://www.jegonet.com/cgi-run/technote/read.cgi?board=injung3_16jego13&y_number=238&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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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88(고려 우왕 14)  요동정벌군 이성계, 위화도 회군  

  1836(조선 헌종  2)  김정희, 성균관 대사성이 됨

  1908  여류 소설가 백신애 태어남

  1926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간행+

  1946  서울 각 전문학교, 대학으로 승격
  1949  남로당 국회 프락치사건 발표
    주한미군 철수한 뒤 남북정치협상을 통한 통일을 주장했던
    이문원, 최태규 국회의원 검거됨

  1954  3대 민의원 총선거
    자유당 116명, 무소속 67명, 민국당 15명 당선
  1957  제1회 발명의 날 기념식
        아시아영화제(도쿄)에서 <시집가는 날>이 희극상 수상

  1962  통행금지 부활
  1964  서울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

  1975  문교부, 학도호국단 창설안 벌표

  1980  대법원, 10.26사태 관련자 형벌 확정 발표
  1981  정부, 정당운영비 4억원 첫 국고보조
  1986  서울대 이동수 분신 자살

오늘, 5월 20일 1986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역사들 속에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할 슬픈 사건 하나가

사진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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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군의 분신 1986. 5.20. 제 18회 한국기자상, 권주훈 기자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거행된 5월제 개막식 도중, 농대 원예과 이동수군이 학생회관 4층에서 온몸에 불을 붙인채 '미제는 물러가라''경찰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투신하고 있다. 분신자살은 이후 대학가에 열병처럼 퍼졌다. 이 사진은 계엄령 하에서 보도되지 못하다가 외신으로 먼저 보도돼 세상에 알려졌다.

[ 한국일보 특종사진 50년 ]에서 발췌



  1988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사제 폭발물 투척, 대학생 7명 검거


   526  시리아 안티오크에 지진, 25만여명 사망

  1293  일본 경창 지역에 지진, 3만여명 사망

  1498  포르투갈 출신의 모험가 바스코 다 가마 인도 항로 개척

  1506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콜럼버스 세상 떠남

  1799  프랑스 작가 발자크 태어남

  1806  <자유론>의 저자인 영국 사상가 존 스튜아트 밀(1806-1873) 태어남

  1902  쿠바 공화국 탄생

  1915  이스라엘의 명장 모세 다얀 태어남
    국방장관 재임시 아랍과의 6일 전쟁을 승리로 이끔

  1920  멕시코 카란자 대통령 피살

  1927  미국의 조종사 린드버그, 대서양 단독 무착륙 비행 성공
    뉴욕에서 파리까지 5,800km를 33시간 29분만에 비행하였다.
    비행기 이름은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이며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1902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린드버그는 모험을 즐겨 비행술을
    배우고 순회곡예비행사에 이어 우편 비행사가 되었다.    
    또 린드버그는 프랑스의 생물학자 카렐과 협력하여
    인공심장장치인 '카렐-린드버그 펌프'를 만들기도 하였다.

  1948  장개석, 중화민국 초대 총통으로 취임

  1956  미국, 비키니에서 첫 수소폭탄 실험

  1978  일본 나리따 공항, 개항 준공

  1991  소련, 최고회의서 자유이민법 통과
        인도, 총선투표서 폭력사태 발생, 60명 사망 수백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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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상한가]

진바이오텍(3) : 美 사료시장 진출 소식
디앤에코(2) : 구룡스틸의 동사 지분보유, 리더스피제이와의 합병 모멘텀 지속
씨티엘 : 감자후 거래 재개 첫날 급등
대우부품 : 액면분할 후 거래재개 첫날 급등
기린 : 지분 매각설 부각


       


       


       


       




하한가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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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미국 쇠고기 전면개방에 따른 검증되지 않은 광우병의 위험성에 가족의 목숨을 내맡길 수 없다며 촛불집회에 참여한 죄로 학교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 학생 여러분들에게 말로만 걱정하고 말로만 반대하며 그런 곳에 참석하지 못한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위해 행동으로 보여주신 학생들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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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라고 애국이, 국가가, 정책이, 정부가 어쩌고저쩌고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나서야 할 때가 되면 몸을 움츠리는 비겁한 어른을 용서하십시오. 또한 어린 나이에 철이 없이 행동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을 대신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학생들의 행동에 불이익을 주는 철부지 어른들의 행동을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참으로 기가 막힌 어른들의 생각과 어른들의 당돌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애국을 가르치고 있으면서 무엇이 애국인지 모르는 선생님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것을 기본으로 가르치는 정책을 펼치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행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정부를 용서해 주십시오.


경향신문보도내용[일부발췌]
‘촛불 꺼!’ 살벌한 학교…참가자 체벌에 “입시 불이익” 으름장
ㆍ전문가들 “시대착오·비교육적 횡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대규모 집회가 있었던 지난 6일 서울의 ㅇ고교. 교실 스피커에서 “불법집회에 참여하는 학생은 학생부로 소환하겠다. 집회에서 사진 찍히면 취업이나 대학에 갈 때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교장의 공지사항이 방송됐다.

지난 9일 오전 11시쯤 전교생의 학부모 휴대전화엔 자녀들의 집회 불참을 종용하는 5번째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1주일 뒤 2000여명의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학교 측은 “집회 참석자는 교장과 1 대 1 면담을 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따로 교육하겠다”는 방침을 통지했다. 이 학교 ㅇ양(16)이 19일 경향신문에 고발한 ‘촛불집회 탄압’의 실태다.

일선 교육현장이 쇠고기 논란을 둘러싸고 학교와 학생간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일부 학교에선 학생들의 집회 참여를 막기 위해 교내방송·문자 메시지·가정통신문을 넘어 체벌과 취업 불이익을 협박하는 등 비교육적인 극약처방을 동원해 “지금이 유신이나 5공 시절이냐”는 반발을 사고 있다.

ㅇ양은 “집회에 참석하면 경찰서에 신상정보가 올라가서 대입이나 취업할 때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학교에 기가 막힌다”며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맞느냐”고 말했다.

민주라는 의미가 왠지 어석하게 느껴지는 일부 기성세대들의 행태를 변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기성세대가 다 그렇다는 생각만은 말아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굳이 변명을 드린다면 가정을 이루고 살아야 하는 책임에 그런 곳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마음을 가진 어른들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촛불집회에 참석해주신 청소년, 학생 여러분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훗날 역사적 평가에 그대들의 행동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평가될 것이며 지금의 그대들의 행동이 마음속에 뿌듯한 긍지를 느끼며 회상할 수 있는 멋진 추억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바람직한 애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청춘들이 아름다울 따름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이 있어 우리나라의 앞날은 밝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학생들과 청소년 그리고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마음으로만 애국하는 못난 기성인 드림.


- 무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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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상한가]

SH에너지화학(2) : 액면분할에 따른 거래재개 이후 연일 급등
진바이오텍(2) : 美 사료시장 진출 소식
아이니츠 : 액면분할 후 거래재개 첫날 급등
소예 : 운송업, 바이오에너지 제조업 등 사업목적 추가
세중나모여행 : 석영자원개발업체 인수소식
한빛소프트 : 프로게임단 매각 추진, 티쓰리엔터테인먼트로의 피인수 소식 등
디앤에코 : 구룡스틸의 동사 지분보유 소식 등
뉴젠비아이티 : 쎄라젠 美 임상 3상 시작 모멘텀 지속
렉스진바이오 : 투자사 美증시 상장소식


       


       


       


       


       


   




하한가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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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가 일본과의 영토분쟁으로 치달으면 “엄중대처”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일본 정부는 이제 대놓고 독도를 “다케시마”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결국 독도를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일본의 영토를 주장하고 나선 이후 독도를 되찾아야 한다는 이유로 군사적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일본 강점기를 끝낸 후 6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또 다시 우리나라 침략의 빌미를 “독도”의 영유권 주장으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 정부의 “엄중대처”는 어느 선일까. 그 동안 일본 정부에 항의 내지 유감을 표명하고 서한을 전달하는 정도였던 우리나라의 “엄중대처” 방식이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익숙한 방식이라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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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대사의 딴청 부리기)


(도쿄=연합뉴스) 최이락 특파원 =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관방장관은 19일 독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라는 것은 일관된 일본 정부의 주장으로 변함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사회교과의 새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새롭게 명기키로 한데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NHK 등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이하생략]


일본이 독도를 자신의 영토로 해야하는 이유중, 경제적 측면 (자료발췌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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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적 측면에서 독도가 국가안보와 동해의 세력확보에 미치는 영향

김태준 (국방대학교) 교수가 쓴 글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지리적 근접성은 인접한 국가간 협력은 물론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가깝지만 먼 나라'로 표현되는 것은 그 동안 한국과 일본의 바람직하지 못한 관계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일본은 '정명가도'(征明假道. 명나라를 정벌하고자 하니 조선은 길을 빌려달라는 주장)를 명분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공했다. 일본 육군을 건설한 야마가타 아리모토(山懸有朋)가 1890년 이른바 '야마가타 의견서'를 통해 일본 '이익선'의 초점은 조선에 있다고 주장한 이래 일본은 한반도를 일본의 '이익선'으로 인식해 왔다. 이러한 전략적 기조가 이어져 일본의 이익선 확보개념은 청일전쟁 이전부터 러일전쟁까지 일본 외교의 핵심이 됐으며, 제2차 세계대전 시에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명분을 통해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했다. 이러한 일본 국가전략의 기조는 변하지 않고 오키나와 반환 당시 사토(佐 )·닉슨 공동성명에서 "한국의 안정은 일본 자신의 안정상 긴요하다"는 사상으로 표현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반도 지배에 바탕을 둔 일본의 전략적 사고방식은 인접국가인 한국에게 늘 불안과 우려를 심어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을 만회하기 위해 그 동안 경제에 전념하면서 조용히 군사력을 준비해 오던 일본이 세계 제2의 해군력 자리를 넘보면서 또다시 한국 영토인 독도에 대해 억지주장을 하고 있다. 지리적 근접성은 변화될 수 없는 상수이며 이러한 지리적 근접성으로 나타난 일본의 침략적 전략기조도 쉽게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독도의 미래가 걱정스럽고, 나아가 국가안보를 위해 대비하는 태세가 필요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영토분쟁은 어느 국가도 쉽게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평화적 해결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과거 식민지였거나 패전국으로서 영토를 빼앗긴 경험이 있는 국가들은 영토문제에 대해 대단히 예민한 민족적 감정을 갖는 경향이 있으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 한민족이 느끼는 감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1954년 변영태 당시 외무부장관이 발표한 성명문의 한 구절을 통해 한민족이 얼마나 독도를 귀중하게 여기는지 느낄 수 있다.

독도는 일본의 한국침략에 대한 첫 희생물이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독도는 다시 우리의 품에 안겼다. 독도는 한국 독립의 상징이다. 이 섬에 손을 대는 자는 우리 민족의 완강한 저항을 각오하라. 독도는 단지 몇 개의 바위 덩어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영예의 닻이다. 이곳을 잃는다면 어찌 독립을 지킬 수가 있겠는가. 일본이 독도를 탈취하려는 것은 곧 한국에 대한 재침략을 의미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동안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했지만, 일본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 독도는 어느새 국제적으로 한일간 영토분쟁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상황이 악화된 것은 그 동안 독도가 당연히 우리의 땅인데 "굳이 추가적인 설명이나 남을 설득할 필요가 있느냐"는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해 온 독도에 대한 우리의 취급 부주의와 일본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자위적인 독백보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독도를 방어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중략)
일본의 해양영토 확보를 위한 노력은 특별하다. 일본은 독도보다 훨씬 작은 동경만 남쪽 1,700km 태평양상에 있는 조그만 바위 덩어리에 불과한 오키노도리 암초를 자국의 영토로 만들기 위해 1989년부터 무려 285억 엔이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인위적으로 콘크리트 섬을 만든 다음, 그 주위에 12마일의 영해선을 그어 대마도보다 넓은 영해를 확보하고 나아가 일본 영토에 필적하는 40만km2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확보했다. 일본정부는 인공섬이 된 오키노도리섬에 대해 해저에 매장된 망간, 철 등 광물자원과 경제수역 내의 엄청난 수산자원을 계산한다면,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한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에 잠기는 조그만 암석에 대한 가치평가도 이러할진대, 한국, 일본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4국의 군사적 요충지의 역할을 고려할 때 독도의 값어치는 추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더구나 영토분쟁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민족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므로, 영토확보를 위해 일본이 기울이는 노력을 우리는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이후생략)


일본의 만행은 이렇게 무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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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이런 잔인한 만행이 두번 다시 있을 수 없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침략을 위한 구실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거나 독도의 영유권이 한국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일본의 침략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서서히 다가오는 침략야욕, 그 전쟁의 시작에 독도가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외교적 “강경대응”은 수없이 많았다. 아직은 독도의 강탈이나 군사적 행동이 없다고 해서 그저 항의 내지는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정도로 끝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상 어떤 행동을 취하기도 힘들겠지만 조금 더 강화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 두 번 다시 전쟁으로 인한 슬픔을 갖지 않기 위해서 국방력을 강화하고 자주 국방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군사적인 면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 4개국을 상대해야 하는 피곤한 위치에 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국방의 의무란 것에 이유를 달아야 한다면 차라리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지금 평화시대라고 생각하는 판단에 국방의 의무를 게을리 한다면 머지않아 또 다시 침략 당하는 슬픈 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년여의 복무기간이 긴 기간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아까운 기간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가 없이는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2년여의 복무기간은 그리 길지 않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반복됐던 일본과의 전쟁, 일본이 침략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어느 시대에고 올 수 있는 전쟁이다. 이 전쟁을 피하려면 우리의 국방력이 일본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평화를 지키려면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이는 평화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광우병의 위험성보다 더 큰 침략 야욕에 광분한 전쟁광들이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침략의 시작, 독도의 영유권을 앞세우고 그 야욕을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한 것은 지리적 여건이 만들어준 선물이고

                      강함을 바탕으로 평화를 누리라는 뜻이기도 하다. 』


- 무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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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1(조선 세종 23)  정인지 등 <치평요람> 편찬 착수
  1442(조선 세종 24)  세종대왕, 세계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인 측우기 발명
    유럽 최초인 이탈리아의 측우기보다 무려 200여년이나 앞섰다

  1881  최초의 신식군대 별기군 설치

  1922  33인의 1인인 천도교 교주 의암 손병희(1861-1922) 세상 떠남

  1946  조선상공회의소 창립

  1957  발명의 날 제정
        제1회 미스유니버스 파견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초대미스코리아 박현옥

  1961  윤보선 대통령 하야 성명

  1978  충남 예산에서 청동기 등 유물 119점 출토
        사육신 묘역 공원화

  1981  경북 월성군 금척리에서 신라 금관 등 100여점 출토


  1469  아시아 무역의 길을 연 항해가 바스코 다 가마 태어남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가마는 1497년 왕의 명령으로 세 척의 배로
    리스본을 떠나 그 해 12월에 희망봉(아프리카 최남단)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폭풍과 반란을 이겨가며 인도양을 횡단했다. 이 항해로 인도로 가는
    뱃길이 열려 포르투갈이 아시아 무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그 뒤 가마는 포르투갈령 인도 총독에 임명되어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1762  독일 관념론의 대가인 철학자 피히테 태어남

  1919  케말 파샤, 터어키 혁명
  1921  미국, 이민제한법 제정

  1941  호지명, 베트남독립동맹 결성

  1960  일본 안보소동
    미-일 안보조약과 행정협정이 일본 중의원 본회의서
    자민당 단독으로 승인되자 일본 전국에서 반대 데모 격화
  1963  터어키, 군부 쿠데타 진압
        인도네시아 의회, 수카르노를 종신대통령으로 결정

  1974  영국, 북아일랜드에 비상사태 선포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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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생각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떤 학술이나 자료의 근거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한 내용임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5개국을 상대해야 하는 외교 부분에서는 피곤한 국가다.

남쪽에 일본, 북쪽에 북한, 중국, 러시아 그리고 우방이라 하지만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애매한 미국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과는 전쟁과 동맹국으로 때에 따라서 우리에게는 늘 피곤한 국가다. 러시아(구,소련)는 외교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관계로 하시라도 적이 될 수 있는 국가이고 중국은 지금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우호관계지만 정치적으로는 북한과 밀접한 국가이다. 일본은 가까운 과거에 우리나라를 강점한 국가이며 현재 정치, 경제 부문에서 협력하는 국가지만 “독도”문제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나라다. 북한이야 말할 것도 없이 아직은 우리의 적국이다. 미국은 우방이지만 지금 북한의 핵무기로 외교상 정부를 압박할 이유가 있는 나라이다.


동북아 중앙에 죽어라 버티며 살아가는 나라가 우리나라인 것이다. 다행히 천성적으로 민족성이 강하여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힘이 있는 민족인 것이 다행이다.

이렇게 5개국을 상대하는 하는 우리나라의 외교 정치는 그래서 늘 피곤하다. 한쪽을 외교 문제를 막을 구실로 다른 한쪽에서 피곤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교상 기구한 운명을 가진 나라라는 것이다.


미국의 쇠고기 문제도 혹시나 이런 외교적인 문제로 무조건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솔직히 정치인이 아무리 국민을 위하지 않는다지만 국민의 생명을 등한시하면서 까지 협약을 체결할까. 아무리 막가는 정치를 한다지만 식구들의 목숨을 내어 놓는 약속을 하겠는가 하고 생각을 해본다.

지금 국민이 촛불집회를 하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그것을 모르쇠로 일관할 뱃장이 과연 있겠는가. 이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밝히지 못할 외교적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5개국을 상대해야 하는 외교, 5개국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고 응해야 하는 정부, 그런 고충이 있다면 이해가 된다. 누구라도 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분쟁보다는 양보를 택했을 것이라 생각을 해본다.


우리나라의 외교적 수세를 기회로 일본은 독도를 “나케시마”로 역사를 바꾸려 한다.  

역시 일본은 교활하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지고 있는 틈을 이용해 독도를 일본 영토화 하고 있다. 국민에게 질타를 받고,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는 우리나라 정부의 나약함을 기회로 슬그머니 “독도”를 침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만큼은 호락호락하게 넘겨서는 안 된다. 이것만큼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다. 국민과 정부가 뭉쳐서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일본과의 외교문제에 발목 잡힌 일이 있어 일본의 독도 주장에 어떤 대응도 하지 못한다면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우리의 영토를 빼앗겨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또 다시 침략을 허용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이유로 우리에게 양보하라는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외교전을 펼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물건은 하나에 물건에 대한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여섯 명.

다섯 사람 각자가 틀면 소유할 수 없는 물건이라면 다섯 사람의 요구조건을 들어줘야 소유를 하게 된다. 이런 경우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모양과 비슷하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나라 외교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힘을 쓰고 싶어도 북한의 핵시설 문제로 발목을 잡고 있는 주변 국가들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늘 우리국민은 정부의 외교에 불만을 갖는다.

정부의 불만족스런 외교에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외교라는 것이 당당함을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불평등하거나 불리한 협약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국가적인 이해관계에 얽힌 문제가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 하는 경우. 국민에게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외교 협상이라는 것이 아닌가. 이런 피치 못할 경우가 있다면 그것이 굴욕적인 외교가 아닌 정도라면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제 협약은 양보하고 싶어 양보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외교라는 것도 아무 이해관계가 없을 때 비로소 동등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국제적 외교와 국가 간의 협약에 우리가 힘쓰지 못하고 양보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런 협약을 해야 했던 정부의 괴로움을 십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동북아 외교, 그리고 북한의 핵시설 문제로 인한 국제적 입지가 혹시라도 어떤 협약에 무언의 압력으로 행사되고 있다면 우리는 자주국방의 힘이 없음을 한탄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외교며 국가 간의 협약에 중대한 작용을 하는 힘의 논리인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지금 정부가 처한 “국제외교”나 “국가 간 협약” 입장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자유라는 것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힘이 있어야만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이다 』


- 무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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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중학교사회과 신 학습지조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 명기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 신문이 18일 보도했다고 한다.


[서울-뉴시스 보도내용 일부발췌]보도내용 전문

일본 정부는 중학교사회과 신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에 대해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새로 명기할 방침이라고 요미우리 신문이 18일 보도했다이제까지 일본 문부과학성의 지도요령과 해설서에는 북방영토에 관한 기술이 있었지만 독도에 관한 기술은 한일 관계를 배려해 보류해 왔다.민간 출판사 경우 문부과학성의 지도요령과 해설서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며 독도의 기술 유무도 출판사마다 다르지만 이번 조치가 앞으로 교과서 제작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왜놈들은 늘 그랬다.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말이다. 정부 각료들이 한마디 떠들고 나서 수습될 만하면
민간인들이 또 설쳐댄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겨대면 이것 혹시 “선전포고” 내지 “강탈행위” 아닌가
일본에서 “독도영유”를 주장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일본정부 입장에서 발표하면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한국에 “선전포고”하는 것과 다를바 없지 않느냐
그리고 개인이나 도시에서 “독도영유”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개인적, 단체적인 문제니까 “강탈” 아니면 “범죄집단”이니 범죄인도 협정에 의해서 처리하거나 그것이 안 된다면 천상 토벌작전을 해야 하는 사안이 아닌가 이 말이다.

지금 일본은 혹시 한국 침략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영토라 주장하여 학생들에게 자기들의 땅인 독도를 찾아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가르쳐 침략을 정당화하는 계획을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훗날 전쟁의 정당성을 마련하기 위한 포석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도문제를 그저 외교적 강력대응이나 유감표명으로 대응하기에 너무 늦기전에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두번 다시 일본의 강점기를 이 땅에 들여놓아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이다.

일본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땅으로 표기 되어 정상적인 역사 교육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삼천리 강산은 왜놈들이 찾아야 할 일본 땅이 되고 마는 것이다.


8일 일본 외무성이 인터넷에 “독도영유”를 주장한 내용.

[한경보도내용일부]

『일본 외무성은 인터넷 홈페이지(www.mofa.go.jp)에 '독도 영유권에 관한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이라는 게시물을 통해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 표기)'는 일본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게시물은 '다케시마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라는 14쪽 분량의 팸플릿으로 일본어는 물론 한국어와 영어로 제작돼 있으며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열람,인쇄할 수 있다.


외무성은 팸플릿에서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일본이 다케시마를 실효적으로 지배해 영유권을 확립하기 이전에 한국이 이 섬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는 명확한 근거가 한국 측으로부터 제시돼 있지 않다"고 강변했다.』(이하생략-보도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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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독도 일본 영유권 주장 팸플릿.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 등 3개 언어로 제작된 14쪽짜리의 이 팸플릿에서 일본 외무성은 일본 측 주장을 일방적으로 담은 10가지 근거를 강변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이 늘 이렇게 독도 영유를 주장하면 우리나라 정부는 늘 엄중하게 대응하겠다는 말로 대한다.
일본은 꾸준히 “선전포고”를 하는데 말이다. 이것은 내 무식한 생각에 일본정부에서 우리나라를 향해 “선전포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간혹 “선전포고”를 했는데 계속 눈치를 못 채고 있다가 일본이 그것을 빌미로 군사작전을 감행한다면 어찌하겠는가?

일본을 경계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독도영유”를 꾸준히 진행한 것을 “선전포고”로 말을 바꿀 날이 온다면 그동안 그저 말로만 대응한 우리도 할 말이 없다.

“독도영유” 주장으로 침략전쟁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생각도 해 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제 독도에 대한 일본의 “독도영유” 주장을 끝내야 한다. 서럽고 슬펐던 일본강점기를 이 시대에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중대응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군사적 대응까지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무식해서 이렇게 비약된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왜놈들이 독도를 들먹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침략전쟁”의 빌미를 만들기 위한 일본의 사전공작이라는 생각만 가득하다.


역대 독도망언 일지

▷ 2004. 1. 9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한국의 독도 우표 발행 계획에 대해“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며 한국은 잘 분별해서 대응했으면 좋겠다”

▷ 2001. 2. 27 시마네현 스미타 노부요시 지사

"독도는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일본 영토이자 시마네현 5개 촌에 속해 있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 ▷ 2000. 9. 21 모리 요시로 총리

"다케시마 영유권 문제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일본의 고유 영토라는 것이 일관된 입장" (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하루 앞둔 당시 KBS와의 인터뷰. 당시 KBS가 모리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발언을 빼뜨린 채 방송해 물의를 빚었다)

▷ 1996 일본 자민당 외교 조사회

"다케시마는 틀림없는 일본 영토”,“2백 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 설정때 다케시마가 한국 수역에 포함돼서는 안된다”

▷ 1996. 10. 22 외무성 하시모토 히로시(橋本恕) 대변인

"다케시마는 우리 영토며 이같은 사실은 변함이 없다"

▷ 1996. 10. 06 일본 자민당 정조회장 야마자키 다쿠(山崎拓)

"자민당 총선 공약에 독도와 디아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 영유권을 명기한 것은 정당", "이를 항의할 경우 내정 간섭적인 것이 될 우려가 있다"

▷ 1996. 9. 30 일본 자민당의 총선 공약

"독도는 일본 영토임을 모든 기회를 동원해 한국측에 주장한다"

▷ 1996. 베스트셀러 『대장성 극비정보』中

"일본의 해군력은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다. 독일·영국·프랑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마어마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케시마 문제를 두고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이 한국 해군이 어떻고 저떻다고 얘기했다는데 바보 아닌가. 해상 자위대의 이지스함 한 척만 가면 아마 한국해군 7,8할은 전멸이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7,8할은 바다에서 몽땅 사라지게 된다"

▷ 1996. 2 일본 연립 여당

"독도가 지난 1905년 일본 영토로 등록돼 시마네(島根)현이 관할토록 결정했는데도 한국측은 아무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고 인정했다. 한국측의 독도 접안시설 공사에 적극 대처하라"

▷ 1986. 9. 한일외상회담 구라나리 외상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 문제임을 제기한다"

▷ 1984. 2. 10 아베 외상

"독도는 국제법상이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 영토", "독도를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며 평화적 수단으로 꾸준히 해결을 추진하겠다"

▷ 1965. 9. 좌등영작 수상

"독도는 예부터 일본 영토라는데 의심이 없다"

 

- 무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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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은 말한다.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정치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게 되면 모두가 민심을 읽지 못한다고.... 실망한다.

또한 야당이었을 때는 그렇게 민심을 잘 읽던 사람들이, 왜 여당이 되면 하루아침에 민심 읽는 능력이 사라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찢어지게 가난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부자가 되면 어제까지 힘들었던 생활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정치인도 힘든 야당 시절의 어려운 생활을 망각하는 것일까. 이제 여당이 됐으니 어려운 것은 생각하기 싫다고 팽겨 치는 것일까. 국민 다수의 정신으로 살아봤으니 이제는 국민 소수 속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민심 읽기를 포기하는 것일까.


민심을 읽는다는 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 또한 국민 다수를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것처럼 편한 것은 없다. 이렇게 다수를 위한 정치가 편한데 하지 못하는 이유는 혹시나 다수를 위한 정치가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민심을 읽어보면 천박하기 이를 데가 없어 고상함이나 품위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민심은 천심”이라고 말들만 하지 정작 다수를 위한 정책을 펴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자기도취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남보다 똑똑하고, 남보다 비범해서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을 따라와야 한다는 고집 때문이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고집에 국민 다수가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 말이다.


국민다수가 원하는 정책이라는 것은 제일로 하기 쉬운 정책이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하기만 하면 되는 정책이니 그것처럼 쉬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해결해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 아닌가.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고 나면 바로 국민 다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참 우습지 않은가. 어제까지 당당하게 국민 다수의 뜻에 어긋나던 사람들과 정당이, 국민을 생각하라고, 민심에 따르라고 여당을 윽박지른다. 참으로 속 보이는 짓이 아닌가.


여당과 야당에 따라서 색을 바꾸는 위인들, 그래서 정치인들의 안중에는 국민은 없다는 것이 아닌가. 정치인에게 국민은 그저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정치인들이 민심에 귀를 기우리겠다는 말도 이제는 국민들이 믿지 못하겠다한다.


  집권 3개월도 안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격한 하락을 보인다.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3, 14일 전국의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조사(95% 신뢰수준에 ±3.7%포인트)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은 31.3%, 이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23.3%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각각 60%, 50%를 웃돌된 국정지지도와 당 지지율이 3개월도 채 안 돼 거의 반 토막이 된 것이다.

통합민주당 역시 리얼미터의 13, 14일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16.9%로 한나라당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 동안 정당들이 당리당략만을 생각하고 국민을 위해서 한 일이 없다는 결과이기도 하다. 야당 시절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열심히(?) 떠들어대던 것들도 여당이 되는 순간 국민에게서 돌아서는 정치인을 이제 더 이상 국민은 거들떠보지 않겠다는 국민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현상을 보면 국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보기 어려운 당명으로 출마를 하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생각한 정당을 만들었다는 것은 정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단체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연 정당은 국가와 다수의 국민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을 했을까? 독재타도를 외치며 수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민주화, 그 민주화를 발판으로 만들어진 정당들이 과연 그렇게 외쳐대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다수는 국민이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을 했던 정치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략적 모략으로 사라졌을 뿐이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다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기대할 정당은 없다고 국민이 결정하게 되는 순간 과연 우리나라 정치는 어떤 형태로 되어갈까.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당정치가 붕괴될지도 모른다. 정치 발전이 없는 국가, 정치인과 정당을 믿지 못하는 국민,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두렵기만 하다. 이렇게 정치가 못 믿을 것으로 되어간 책임이 과연 누구에게 있는지 잘 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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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리는 오늘,
민주화를 위해서 희생된 분들이 무엇을 그토록 원했던 것인지, 어떤 정치를 원했던 것인지, 정치인들이 어찌 처신하길 원했는지 생각해봐야 하며, 지금 각 당을 막론하고 지지율이 하락하는 이유에는 국민 다수가 정당의 존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 할 것이며,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오늘 그 희생의 의미를 정치인과 정당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날이기도 하다.


『 값진 희생의 의미를 잊는 것은 희생을 배신하는 역적 행위이다 』

- 무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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