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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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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조선 연산 10)  도성 내 원각사 폐지  

  1536(조선 중종 31)  율곡 이이 태어남

  1628(조선 인조 6)  실학자 이수광 세상 떠남

  1941  총독부, 조선임시보안법 공포 시행

  1974  동아일보, 광고 무더기 해약사태 발생. 이후 7개월간 계속
  1979  북한, 대한체육회에 모스크바올림픽 단일팀 구성제의

  1981  서울 대한화재보험 빌딩 지하식당서 가스 폭발. 3명 사망. 130명 부상

  1990  국군보안사령부 명칭을 1991.1.1일부터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키로 결정
  1996  신한국당, 단독국회 열어 안기부법 노동법 날치기 통과


  1716  영국 시인 토마스 그레이 태어남
    "저녁종은 사라지는 하루를 슬퍼하며 울린다."
    "모두의 마음에 들 친구는 없다."

  1893  중국 초대 국가주석 모택동 태어남
  1898  퀴리 부인, 라듐 발견

  1932  중국 감숙성에 진도 7.6의 강진. 7만명 사망
  1939  터키 에르징칸에 진도 7.9의 지진. 3만명 사망, 10만명 부상

  1941  미국-영국-중국, 군사동맹 체결

  1957  제1회 아시아 아프리카 연대회의 열림

  1972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 세상 떠남

  1990  GCC정상회담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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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 24일부터 1월 1일 또는 6일까지, 12월 25일 탄생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명절. 부할절과 더불어 중요한 세계인의 명절
  * 대부분 12월 25일이 성탄절이나 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 6일이 성탄절이다
  * 성탄절이 12월 25일로 정해진 것은 서기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였다.
    천지창조 시작한 1월 1일 기점으로 인간을 창조한 것이 엿새만의 일이기에
    그 옛날 성탄절은 1월 6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짓날인 12월 25일로 앞당긴 것이다.
  *  12세기에 이 날은 가장 중요한 축제일이 되었고 선물을 주고 받는 풍습이
    생겼다. 예수 탄생을 소재로 한 많은 예술작품이 제작되었다.
  * 19세기에 크리스마스 카드가 일반화되고 캐럴도 불려지기 시작하였다.
    산타클로스도 이 때 등장했다.
  * 1843년 영국의 삽화가인 호슬리가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넣고 "당신에게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새해를"이란 글귀로
    카드를 만들어 판매한 것이 크리스마스 카드의 시초이다.
  * 1907년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실이 발매되었고, 우리 나라는 1933년에 시작.
  * 성탄절에 칠면조 요리를 즐기기 전에는 수탉이나 거위 요리로 잔치를 했다

  1888  국어학자 환산 이윤재 태어남
  1898  서울에 처음으로 전차 등장(서대문-청량리간)

  1971  서울 대연각 호텔에 대화재. 164명 사망

  1982  서양화가 오지호 세상 떠남
    예술원회원 역임. 저서: 현대회화의 근본문제, 미와 회화의 과학
  1989  교육학자 성내운 세상 떠남
    연대 교수와 광주대총장 및 해직교수협의회 초대회자 역임.
    저서: <스승은 없는가>, <분단시대의 민족교육>


   800  카를 대제 대관식

  1524  인도 항로를 개척한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 세상 떠남

  1887  미국의 호텔왕 힐튼 태어남
    "아주 가난한 그리스 사람이 아테네 은행의 수위에 응모했다.
     시험관이 글씨를 쓸 줄 아느냐고 물었다. 이 사람은 자기 이름밖에 쓸 줄
     모른다고 하여 퇴짜를 맞았다. 그 사람은 돈을 빌려 미국으로 건너갔다.
     몇 년 뒤 그리스 태생의 한 실업가가 뉴욕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한 기자가 회고록을 쓰라고 하자 실업가는 웃으면서 '나는 글씨를 못씁니다.
     내가 글씨를 알았다면 아직도 은행 수위로 있을 겁니다.'고 대답했다."
                              ----  힐튼의 자서전에서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재능을 근심하지 말고 자기가 가진 재능을 발견하라.
     큰 생각을 갖고 큰 일을 하라. 당신의 가치는 당신 자신이 만드는 틀에 의해
     결정된다. 많은 사람이 실패하는 것은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1919  파리강화회의, 국제연맹 창립 결의

  1926  일본 왕 다이쇼 세상 떠남

  1941  일본군, 홍콩 점령

  1977  희극왕 챨리 채플린 세상 떠남

  1986  이라크 보잉 737여객기, 사우디공항 비상착륙중 납치범 폭탄테러
    승객 62명 사망
  1989  유혈시민혁명으로 쫓겨난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 부부 처형

  1991  소련, 고르바초프 사임 공식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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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품에 안겨서
     감사 기도 드릴 때..."로 시작되는 노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바이에른 왕과 오스트리아 황제 사이의 협정(1816)으로
     강을 사이에 두고 마을이 분리되자 인근의 주민들은 가슴아파하다가
     1818.12.24에 한 교회로 모이게 되었다. 교회의 오르간이 낡아 사용할 수
     없었으므로 신도 두 사람이 기타를 들고 나와 자작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 다음 해 봄, 오르간을 고치러 온 사람이 그 악보를 갖고 가 독일 여러
     곳을 오가며 퍼트리게 되었다. 이 곡이 바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1488(조선 성종 19)  서거정 세상 떠남
  1494  조선 제9대 임금 성종 세상 떠남

  1598(조선 선조 31)  임진왜란 끝남

  1897(조선 고종 34)  손병희, 제3대 동학교주에 취임

  1950  서울시민에 피난령

  1960  소-북, 기술 원조 및 무역 협정 조인
  1967  광주 학성금속공장서 폭발. 7명 사망. 5명 부상

  1972  미국 알래스카주 남쪽 해상서 한국인 승무원 32명 탄 화물선 난파
  1976  청록파 시인 박목월 세상 떠남
  1979  금성사 창원공장 불, 피해 91억원

  1987  허영호,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

  1991  김정일, 군최고사령관 승계
  1993  갈리 유엔사무총장, 북한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북
  1997  미국, IMF 1백억 달러 조기 자금지원 발표


  1811  영국의 소설가 윌리엄 새커리 태어남
    대표작; <허영의 시장>
    "사랑의 승리는 최고, 실연도 나쁘지 않다.
     당신과 함께 걸으면 가슴의 단추 구멍에 꽃을 꽂은 듯한 느낌이다."
  1814  미-영 전쟁 종결

  1865  미국, 반흑인단체 KKK단 결성

  1918  전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 태어남

  1937  월트디즈니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미국에서 개봉
    만화영화 사상 처음 전신크기로 상영됨

  1942  프랑스, 비시정권 동조자 장 루이 다를랑 장군 피살

  1966  미군 전세기 C l-44기가 빈타이 부근 계곡에 추락. 129명 사망

  1976  일본, 후쿠다 다케오 내각 출범

  1980  중국검찰, 강청에 사형 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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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조선 고종 13)  한글학자 한힌샘 주시경 태어남

  1914  남해안지역에 진도 3의 지진 발생
  1934  시인 김소월 세상 떠남
    본명 김정식. 대표작: 진달래꽃, 산유화
  1937  일왕 사진 각급 학교 배부하여 경배케 함

  1950  전매청 및 지방전매관서 설치법 공포시행
  1957  육종학자 우장춘, 부산시 문화상 받음

  1963  여주 호포서 나룻배 전복. 안양 안흥 국민교생 49명 익사
  1968  미국 푸에블로호 승무원 82명 및 유해 1구, 판문점 통해 귀환
    북한 억류 11개월만에 귀환

  1970  정부 종합청사건물 준공
  1972  통일주체국민회의, 제8대 대통령으로 박정희 선출
  1977  경북 고령에서 가야시대 순장묘 발굴

  1987  대법원, 혼인에 관한 특례법시행규칙 시행
    동성동본규제(88년 12월 31일한)

  1991  한국전자통신연구소 강관용 박사팀, 고온초전도 고주파 수동소자 개발


  1739  영국 발명가 아크라이트 태어남
    산업혁명기에 방적기 발명

  1915  아인슈타인, 상대성 이론 발표

  1953  소련, 베리야 전 내상 등 7명 '인민의 적'이라는 죄명으로 총살
  1958  동경타워 완공

  1972  니카라과 마나과에 진도 6.2의 지진. 5,000명 사망, 건물 80% 붕괴
  1973  프랑스 카라벨 제트기 모로코에서 추락. 106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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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낸시 여사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안지숙 양과 이진우 군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뉴욕 성프랜시스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게 했다.
    성공리에 수술을 마친 이들은 12월 22일, 37일만에 귀국했다.

    < 동 지 >
  * 24절기의 22번째로 대설 다음에 든다.
    태양이 남회귀선, 적도 이남 23.5도인 동지점에 도달한 시절
    밤이 가장 길다. 남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짧다.
  * 동짓달이라 할만큼 11월은 동지가 대표한다. 옛날엔 동지를 설이라 했다.
    설날이 바뀌면서 '작은 설'이란 이름이 생겼다.
  * 왕실에서는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고, 동지사라는 외교사절을 파견하였다.
  *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었다. 새알심을 만들어 넣었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올려 제사를 지내고 다음에 방과 마루 부엌, 광 등에 한 그릇씩
    떠다놓고 대문에는 죽을 뿌려두고 나서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다.
  * 절에서도 죽을 쑤어 대중에게 공양한다.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마구니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믿었다.
  * 동지받이; 동짓달 보름쯤에 함경도 앞 바다에 몰려드는 명태의 떼
              볼이 붉고 등이 넓고 알배기가 많다.

  1145(고려 인종 23)  <삼국사기> 간행

  1901  제1회 하와이 이민 121명 출발
  1909  이재명 열사, 명동성당 앞에서 이완용 습격해 중상을 입히고 체포
        최초의 극장 원각사 개업

  1919  목포지역에 진도 3의 지진 발생

  1947  김구,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 반대성명

  1961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실시

  1983  경북 문경군 봉오탄광서 화재. 9명 사망
  1988  외무부, 89년 1월 1일부터 해외여행 제한연령의 완전철폐를 발표

  1989  북경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제6차 남북체육회담 개최
    호칭의 중국어 표기 '가례아', 단장선임은 단일단장제, 선수 수에 따라 결정
    공동 사무국 설치 및 운영, 선수는 선발전을 통해 선발 등에 합의

  1993  베트남과 대사급 외교관계 수립
  1997  3차 대북구호물자 지원을 위한 4차 남북적십자 대표 접촉 결렬


  1808  베토벤의 제5,6 교향곡 초연

  1823  프랑스의 곤충학자 파브르(1823-1915) 태어남
    "역사는 왕족의 사생아의 이름은 기록하면서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언급하는 일이 없다."

  1858  이탈리아 작곡가 푸치니 태어남

  1880  영국의 작가 조지 엘리어트(여, 1819-1880) 세상 떠남
  1885  일본, 내각제도 발족

  1956  영국과 프랑스군, 이집트에서 철수 완료

  1989  루마니아의 니콜라이 차우세수쿠 정권, 집권 24년만에 붕괴
  1989  아일랜드출신의 프랑스 작가 사뮈엘 베케트 세상 떠남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

  1991  소련의 그루지아 공화국,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유혈 교전, 70여명 사상
  1993  남아프리카공화국 의회, 300년 백인통치 종식시킬 새로운 헌법안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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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cafe.naver.com/lottetown]

1988년경이라 생각됩니다.
잠실에 롯데월드가 분양되고 그 당시 잠실은 그렇게 번잡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롯데월드 앞에 고층 주공아파트와 테헤란로를 따라서 늘어선 5층 주공단지들이 고작이었습니다. 송파대로를 따라 이어진 도시는 그 시절 그저 도시가 들어서기 초반 모습으로 황량하기만 했습니다. 두개의 석촌호수 앞쪽을 롯데가 매입하고 한쪽에 롯데월드가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잠실은 롯데가 들어서고 조금씩 개발이 시작되어 나갔습니다. 물론 도시의 발전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성장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90년도 초반 가락동쪽이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고 듬성듬성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 롯데는 지금의 롯데월드 부지와 그 옆의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롯데월드가 개장되고 그 동안 수차례 롯데는 비어있는 부지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했고 번번이 그 허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송파 일대가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치루면서 아파트로 가득해지고 그 이후 가락동방향이 개발되면서 교통량이 많아져 상당한 교통문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그 곳에 초고층 빌딩이 서게되면 교통난이 가중되어 도심이 마비되는 현상이 우려된다는 것이 허가 반려의 주된 요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롯데부지는 개발도 하지 못한채 지금은 재산가치로도 어마어마한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저 빈터로 두 번 강산이 변하는 세월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기업으로서는 재산적 손실을 봐야했을 것입니다. 수차례에 걸쳐 개발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 번번히 차단되고 문제점이 많다는 이유로 반려만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잠실 롯데부지에 제2롯데월드를 신축하겠다고 하나 봅니다. 반대가 만만챦더군요. 하긴 지금의 사정으로 볼때는 송파구와 성남에서 들어오는 차량이 뒤엉키면 정말 교통생지옥이 되는 것은 뻔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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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cafe.naver.com/lottetown]

제2롯데월드를 반대하시는 분들이 우려하는 생각은 맞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도시가 한 건물로 인해 지역이 마비될만하고 높은 빌딩으로 인한 프라이버시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 개발은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개발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그런 개발을 꼭 하지 못하게 협의하고 양해를 얻어야 합니다. 그런 빌딩이 유발하는 최악의 경우를 막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개발로 인한 기업의 이익에 대해서도 포기하라는 말까지도 해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말이 정상적이지는 않은 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어찌 해결해야 서로가 불만없이 해결될까요. 반대하시는 분들이나 단체가 돈을 걷어서 롯데의 개발이익금을 처리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양보하라고 할까요? 아니면 공권력을 동원해서 몰수할까요? 아니면 돈 많은 기업이니 공원을 조성해서 지역주민을 위해 희사하라 할까요? 아니면 허가를 내어 주지 않는 서울시에 그 책임을 물어 사들이라고 할까요? 아니면 정부에서 국고로 매입하라 할까요? 해결방법이 어떤 것이 좋을까요?


이십년간을 굳세게 개발하겠다고 해왔던 롯데입니다. 
그 이십년간을 무던히 제2롯데월드를 만들려고 해왔던 기업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공터로 그렇게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세월을 버텨왔습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제2롯데월드는 안된다합니다. 그 안된다는 것을 해결할 방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이것이 오히려 롯데에게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만 강요하는 것 아닐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행위를 막는 공권 남용이 아닐까요? 남의 재산에 콩놔라 팥놔라 시시콜콜 간섭하는 집단적 이기가 아닐까요?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 논리며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기업의 횡포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해 원망하고 하소연하고 심지어는 그로 인해 홧병이 나기도 합니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재산권 행사를 못하게 하는 국가나 단체가 잘못됐다고 취재하여 보도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롯데는 지금 틀림없이 공권력과 지역의 이기로 그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지역의 평화로움을 깨는 개발이라 막아야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도 제시하지 않고 무조건 하면 안되고 그저 롯데가 양보해야 한다면 롯데 정말 억울한 것 아닐까요.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보여집니다.

제2롯데월드를 만들지 못하게 하려면 그 해결방법도 같이 제시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롯데가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며 롯데의 양보를 얻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저 말로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롯데 입장에서보면 억지며 이기로 보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게 갖은 자만이 그 재산권이 보호되고 있는 사람들의 재산권은 나몰라라 하는 것은 틀림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 모두가 재산권은 보호되어야 하고 재산권의 행사를 막아야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책이나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안된다는 것이 이유라면 저렇게 하면 해결될 수 있다라는 것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현명한 선택이며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 않을까.


- 무식한 -


[MBC 2008.9.19일자보도]
정부, "잠실제2롯데월드건림 사실상 허용"
[동아닷컴 2008.12.20일자보도]
제2롯데월드 허용




[한겨레 2008.12.20일자 보도]
정부, 제2롯데월드 신축 허용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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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테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롯테와의
    사랑에 괴로워하다가 12월 21일 유서를 쓰고 마지막으로 롯테를 찾아간다.
    롯테에게 시를 읽어주다가 감정이 격해진 베르테르는 롯테를 포옹한다.
    롯테는 "이것이 마지막이예요. 다시는 만나지 않겠어요"라고 소리친 뒤
    그러나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옆방으로 가버렸다.
    다음날 밤 베르테르는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쏜다.

  1431(조선 세종 13)  유효통, 약용식물 정리한 <향약채집월령> 편찬

  1820(조선 순조 20)  흥선 대원군 석파 이하응 태어남

  1905  이또오 히로부미, 초대 조선통감으로 취임

  1968  경인고속도로 서울-인천간 개통
    길이 29.5km, 넓이 4차선 20.4m(1993년 6차선 확장) 인터체인지 6개
    인천항을 통한 수출입 화물량이 늘어나고 1969년 준공예정인 인천 제2독이
    완공되면 급격히 늘어날 화물수송량에 대비하여 1967년 5월에 기공하여
    1년6개월만에 완공된 경인고속국도는 1시간 거리를 18분으로 단축시켰다.

  1974  TBC, 중앙일보와 합병. 주식회사 중앙일보 동양방송으로 상호 변경
  1979  최규하, 제10대 대통령 취임

  1990  한국전기연구소, 국내 최초로 자기부상열차 개발


  1313  이탈리아 문학가 보카치오 세상 떠남

  1699  프랑스의 작가 라신느 세상 떠남
    "그것은 이미 내 핏속에 숨어 있는 뜨거운 생각이 아니다.
    이제는 먹이를 움켜쥐고 놓지 않는 사랑의 여신 그 사람이다."

  1879  소련 독재자 요지프 스탈린 태어남

  1917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 태어남
    1972년 노벨문학상 수상.
    대표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릿광대의 의견, 휴가병 열차

  1946  일본 남해도 시코쿠해역에서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8.0의 진도 발생
    1,400명 사망 실종, 가옥피해 13,000여호

  1958  드골,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에 당선

  1971  유엔사무총장에 발트하임 선출
  1972  동서독, 관계정상화를 위한 기본조약 조인
  1975  아랍게릴라, 빈 소재 OPEC본부 습격

  1988  미국 보잉 747여객기, 스코틀랜드 상공서 추락. 258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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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을 단속하는 것을 보면 보는 사람도 마음이 아프다. 먹고 살기 위해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마음이 오즉하겠는가. 하지만 과연 노점상들이 정당한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노점상들의 강제철거에 반대를 하며 생존권을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 봐야 한다.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있는 곳은 그런대로 상권이 잡혀있는 곳이 많다. 그 길에 하나, 둘씩 자리잡고 장사하는 노점상들은 과연 생존권이라는 것으로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도시가 형성되고 중심지에 상업지가 들어서면서 상권이 형성된다. 도시가 확장되고 커지면서 그 상업지는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고 상인들은 비싼 상업지에 비싼 임대료를 내가면서 장사를 하게된다. 장사를 하기 위해 시설비와 유지비가 들어가고 장사에 따라서 사람들을 고용하게 된다.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해서 장사를 하면서도 수입이 그렇게 많지 않아 망하는 수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 조금씩 들어서는 노점상들, 길 한복판을 장악하고 임대료도 없이, 유지비도 거의 들어가지 않는 영업을 한다. 그리고는 장소에 따라 노점상들이 나름대로 정하는 권리금도 생기게 된다. 장소에 따라서 심지어 1억 이상 호가하는 노점상도 있었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철거한 석촌호수 주변의 노점상철거의 경우 기업형 노점상이 많았으며 권리금 또한 상당한 금액으로 노점상들이 오히려 주변의 상가보다 더한 이익을 올리며 부를 구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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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2007.10.17 보도 고양시ve노점상 물리적 충돌 불가피]

노점상을 철거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강제철거하는 직원들을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너무 하다” “당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다” “단속반들은 물러나라” 등등 노점상들의 편에서만 생각하고 어느 누구도 그곳의 상인들 생각은 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노점상들이 그곳의 상인들이라면 노점상을 허용하겠는가. 그 비싼 임대료와 유지비를 들여가며서 장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오가는 장소를 빼앗기고도 가만히 있겠는가. 생각해보라, 과연 노점상들이 점령한 상권이 정상적인가를.....


나 역시 노점상들이 철거 당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언론이나 사회단체도 노점상들의 철거를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노점상들이 점거한 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 생각은 과연 해보았는가 묻고 싶다. 당신들이 그 거리에서 비싼 임대료와 유지비를 들여가면서 장사를 한다면 과연 지금 그 생각이 변함이 없겠는지 묻고 싶다.


노점상들이 파는 먹거리들이 과연 그곳 상인들의 수입에 타격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오다. 노점상들이 파는 잡화들이 번듯하게 차려놓은 상인들의 장사에 문제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그 상권에서 장사를 하는 상가에 있기 때문이다. 생존권을 말하기 전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많은 돈을 들여서 하는 상인들의 생존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많이 들여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은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보여지는 노점상들은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주 작은 자본으로 큰 자금을 들여 만든 상권에 슬며시 발을 들여놓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단속한다고 생존권을 운운하며 철거를 반대하고 철거에 불응하는 것은 어찌보면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라 할수도 있다.


서민을 보호하자는 취지는 서민이 정당치 못한 행위까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노점상 본인들이 상가 점포주들이라면 과연 이런 노점상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일반 시민들이 바라보면 노점상의 강제철거는 노점상쪽에서만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인들도 한번쯤 정상적인 상가를 운영하는 상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속을 하는 사람들이 지탄을 받는다. 노점상들을 철거해 달라고 요청한 상인들이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한다. 언론도 서민인 노점상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한다. 왜 노점상들만 보호해야 한다는 것인가. 왜 노점상들이 무조건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빚을내어 살아보겠다고 벌인 상인들은 보호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가. 장사가 되지 않아 도산하고 빚에 모든 것을 내준 후에야 동정의 대상이 되고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말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까놓고 말해보자

상권을 위해 서로 돈을 들여 형성해놓은 거리에 슬금슬금 발을 들여놓고 내 자리라며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연 옳은가. 임대료나 유지비를 들이지 않고 상인들의 손님들을 길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빼앗아 수입을 챙기는 행위가 온당한가. 남의 땅에 들어와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이런것들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사고는 힘이 최고라는 무자비한 원칙을 갖고있는 사람이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민을 보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보호받아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호될 이유도 없고 오히려 상권을 침해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생존권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상인들의 생존권은 노점상의 생존권에 뭍혀 보호받을 명분을 잃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바뀐 것이 아닌가. 정상적인 상인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노점상만이 지금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 철거당하는 슬픔을 동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못된 사람이 되어가는 상인들이다. 못된 철거반들이다. 못된 구청이며 못된 시청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지만 남의 것을 빼앗아가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상인들이 노점상들의 철거를 요구한다면 그 길에서의 노점은 해서는 안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원칙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정도인 것이 아닌가.


이런 경우는 흔치 않겠지만 상인들의 수입과 노점상의 수입을 살펴보자.

1. 상인의 경우

면적 20평

임대료 보증금 1억/300만원

시설비용 1억

월 매출 1500만원

월 지출액 - 인건비, 재료비, 월세, 대출이자, 공공요금 포함 1300만원

월 수익 - 200만원

2.노점상의 경우

면적 1평~1.5평

임대료 없음

시설비 100만원

월 매출 1000만원

월 지출액 - 재료비 및 전력비 4~500만원

월 수익 5~600만원


이런 경우 이해가 되시겠습니까?

이런 자리의 경우 노점상의 권리금은 일반 상가에 버금가는 액수로 거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상권이 좋은 경우 상가도 상당한 권리금이 붙어있듯이 노점상 역시 상당한 권리금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자리의 경우 노점상들이 서민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 판단이 전부 옳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노점상들의 철거에 하나같이 동정심을 배풀어 서민인 노점상들을 단속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들을 합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노점상들로 인한 수입의 피해를 받고 있는 상인들을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저는 노점상도 상인도 아닙니다. 저 역시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입니다. 하지만 제 기준에서 냉정하게 판단한 내용을 적어보았습니다.


지금 경제가 어려워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고 애들을 가르쳐야 하는 절박한 사정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활고에 허덕이다 나선 노점상이라지만 나름대로 원칙을 어기면서 남의 영업장소에 무조건 발을 들여놓고 나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지 않느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잘못된 것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관계 기관에서 노점상들이 장사를 할 곳을 정해주는 배려를 합니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없어서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다시 형성된 상가로 들어섭니다. 도시가 형성되고 상업지가 형성되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립니다. 그곳에서 많은 상인들이 실패하여 떠나고 애써서 자리잡은 그곳이 비싸지게 됩니다. 비싼 임대료와 시설비를 투자해 장사를 사는 상인들도 생각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점상들의 강제철거로 못된 사람들이 되어가는 상인들, 일반인들 눈초리를 따갑게 받아야 하는 상인들, 그 상인들의 마음도 아프다는 것을 언론이나 일반인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노점상들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과연 지금 본인이 자리잡고 장사를 하는 노점이 남들의 수입을 가로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강제철거를 비난하기 전에, 강제철거에 불복하여 노점상을 보호해달라고 하기전에 그 자리가 과연 정상적이며 온당한 자신의 자리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점상이 보호받으려면 노점상들 스스로가 상인들과 협조를 해야한다. 상권을 활성화시킬수 있는 이점이 노점상에게는 있다. 상가들이 번잡한 한복판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변 상인들과 노점상들의 멋진 점포가 다양하게 그 장소와 그 상권에 어울려도 손색이 없는 모습으로 조성되어야 한다. 상가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노점상들이 상인들과의 마찰을 피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1. 상인들과 노점상의 개설협조를 우선 협의를 해야한다.

2. 상인들의 영업 수입을 손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제한적인 업종을 선택해야 한다.

3. 깨끗하게 가꿔놓은 길거리를 아름답게 조성할 수있도록 노상점포의 규격과 모양을 다양화하여 길거리가 풍경처럼 느껴질수 있도록 해야한다.

4. 같은 거리에서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생존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노점상인들도 최소한의 수입에 관한 거리조성 분담금을 내도록 해야한다.


  이런것들이 상인들과 협조하여 이루어졌을때 과연 상인들이 무조건 노점상을 내몰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노상점포를 슬쩍 밀어넣고 제발 봐달라는 억지를 부리는 것보다 노상점포도 거리를 조성하는데 한몫을 할수 있다는 신개념 노상점포로 인식되어 질수있다면 어느 상인인들 거부할 수 있겠는가.

진화해가는 노상점포, 거리를 활성화시킬수 있는 다양한 구성, 그 거리가 노점상이 있어 사람이 많아진다는 상술적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노점상을 보호해야 한다는 억지보다는 이런 방안을 강구하여 각 지역의 상인들과 마음을 합쳐 나간다면 어느 누가 노점상을 깔볼수 있겠는가.


모두가 잘 살아가는 세상을 원하고 바라는 사람입니다.

서민들이 열심히 일하며 작은 수입이지만 행복한 웃음이 나오는 가정들이 되기를 소원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원칙을 무시하고 원칙을 부수고 자신의 생존권만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지금 남의 생존권을 침해하고 남의 권리를 빼앗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견해를 달리 할수 있겠지만 제가 바라보는 지금의 노점상 철거문제는 이렇다는 생각입니다.


노점상권의 형성, 이것은 이제 사회적인 문제로 되어버렸다. 노점상들이 기존상권에 문제가 되지 않록 상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각 도시마다 새로운 노점상권을 형성해야 하는 도시계획이 필요한 때가 온 것이다. 과연 노점상권이 형성되어지면 그곳이 정상적으로 서민의 노점상권이 될 수 있을것인지는 가봐야 알겠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끝없는 것이고 기업화된 노점상이 또 나올수 있는 것이 아닐까.


더불어 잘 살아가는 세상,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세상입니다.


- 무식한 -


서울신문보도(2008.12.20)

“말뿐인 서민대책” 노점상 울린다

광명시 아파트 연합까페

광명시 vs 노점상, 끝없는 충돌

쿠키뉴스(2007.10.20)

노점상 시위 정치쟁점화

posted by 개구리발톱

 1519(조선 중종 14)  정암 조광조(1482-1519) 세상 떠남
    기묘사화로 유배지 전남 능주(요즘의 화순)에서 사약 받음

  1550(조선 명종 5)  황해감사 주세붕, 수양서원 창건

  1901  작가 회원 박영희 태어남
    1933년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며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KAFP) 탈퇴

  1933  전주 지역에 진도 3의 지진 발생
  1942  노기남 신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주교 서품

  1965  한국 첫 다목적댐 완공
  1967  서울 시청 앞 지하도 완공

  1978  제8회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3위
  1979  계엄보통군법회의, 김재규에 내란죄를 적용해 사형 선고

  1989  남북고위당국자회담 제5차 예비회담 개막

  1990  국무회의, 군인복무규율개정안 의결
    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군인이 정치 및 정당활동을 일체 금지
  1991  강경대군 치사사건 관련 유서대필 혐의로 구속된 강기훈에게 3년 선고
  1991  강원도 태백시 철암 2동 강원탄광갱도서 천장이 붕괴, 광원 4명 사망
  1994  국내 최장 슬치터널(6,128m) 착공 5년만에 관통

  1997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복권


  1795  독일의 역사학자 레오폴드 랑케(1795-1886) 태어남
    "역사는 과거를 판단하고 미래의 세계를 예언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책은 단지 역사가 왜 실제로 발생했는가를 말할 뿐인 것이다."

  1848  루이 나폴레옹, 프랑스 대통령에 취임

  1960  월남, 민족해방전선(베트콩)결성
  1961  유엔, 대기권평화이용안 가결
  1968  미국 작가 존 스타인백 세상 떠남
    1962년 노벨문학상 수상. 대표작: 에덴의 동쪽, 분노의 포도, 통조림 골목

  1971  부토, 파키스탄 대통령에 취임
  1973  스페인 블랑코 수상 피살

  1981  폴란드, 계엄하 유혈사태로 2백 명 사망
  1987  필리핀 중부해상에서 여객선 도나파즈호와 유조선 빅터호 충돌
    1,530여명 사망
  1989  미국, 파나마 침공
    마누엘 안토니오 노리에가 장군에 축출되고 기예르모 엔다라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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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불량자, 선불폰 개통은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각 싸이트 및 거래에 필요한 인증방법으로 핸드폰 본인인증이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핸드폰 인증만 허용되는 곳에서 가입이나 거래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상당히 불편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통신불량으로 휴대폰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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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사용하고 사용요금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요금을 내지 못해 결국 통화가 끊기고 다른 통신사의 휴대폰도 만들 수 없는 경우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 통신불량으로 인해 휴대폰본인인증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행위가 제한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불편을 감수함이 마땅한 죄지은(?) 통신불량자라서 할말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러한 휴대폰 본인인증만이 있는 곳에서라도 인증을 할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휴대폰 중에 기본요금과 후불요금제가 아닌 선불폰이라는 것이 있다. 

비록 통화요금을 내지못해 통신불량자가 되었지만 선불폰은 개통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본인인증은 받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통신불량의 불편함을 알아야 체납된 요금을 낸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통신불량으로 인해 각종 제약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에게 본인확인에 필요한 자기 명의로 된 휴대폰 하나 정도는 갖게 해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자신이 내지 못해 빚을 지고 있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또한 신용불량으로 인해 불편한 것이 많다는 것도 다들 안다. 신용불량 때문에 각종 금융행위에 제약을 받는 불편도 안다. 모든 경제행위에 제약을 받는 신용불량자가 그래도 본인의 연락수단이며 본인인증수단인 휴대폰 하나쯤은 갖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


물론 경제생활에서 피해야 할 것이 신용불량이다. 

하지만 그래도 본인임을 확인해야 하는 방법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확인을 위해 갖고있는 단 하나 주민등록증으로 본인인증을 하기에는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다.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할말을 없지만 최소한 통신불량자가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한가지를 허용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선불폰은 그런 이유에서 본다면 휴대폰 사용요금을 두 번 다시 밀리지 않고 사용하는 유일한 본인 인증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도 허용하지 못한다면 정부는 모든 싸이트에 본인인증 확인수단을 핸드폰과 다른 대체수단을 사용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가 위험하여 대체수단인 가상주민번호 아이핀이 있지만 아직 아이핀을 사용하는 싸이는 많지 않으며 또한 실명인증을 위해 은행이나 신용정보회사에서 유료로 발급하는 공인인증서를 늘 소지하고 다닐수 없지 않은가. 


신용사회에서 신용불량이 얼마나 불편한지 겪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신용사회에서 신용을 잃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신용불량을 스스로 원하거나 신용불량자가 되서 살아도 좋다는 사람들은 없다. 자신의 뜻과는 달리 부득이하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본인임을 인증하지 못하는 마음이 오즉하겠는가. 본인명의의 휴대폰 마저도 갖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 통신불량자들이 최소한 본인인증을 할 수 있는 선불폰이라도 갖게 허용한다면 좋지 않을까.


바늘도 안들어가는 냉정하고 쌀쌀맞은 통신사와 카드사들 입장을 이해는 하지만 통신불량자들이 다른 사람들의 명의로 사용하여 또 다른 통신불량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통신불량자들의 선불폰 개통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불폰 사용으로 체납된 통신요금을 내지 않으려는 얄팍한 속셈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신용사회에서의 신용불량이 본인에게 얼마나 많은 제약을 가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여의치 않은 사정으로 체납된 통신요금을 내지 못하는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선불폰을 개통할 수 있는 정도는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 무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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