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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은 가장 영향력 있는 女산신

지리산 천왕봉의 산신은 신라시대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평민부터 양반, 그리고 왕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괴 숭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또한 산신에게 여덟 명의 딸이 있었다. 이들이 한반도 팔도의 최초 산신이 되었고, 한반도 전체 토착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이러한 모티프는 하늘의 왕인 옥황상제나 물의 제왕인 용왕과 땅의 신인 도교 수호신과 공유되고 있다.

▲ 지리산 천황봉 성모할매 산신 그림이 한국에서 여산신 아이콘으로 가장 유명한 쌍계사 삼신각에 안치돼 있다. 비록 왕관이나 금관은 쓰고 있지 않지만 아주 당당한 모습이며, 시중들이 제왕의 상징으로 모시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천왕봉에 사당이 지어졌을 때 작은 성모할매 산신의 화강암 좌상이 세워졌다. 1m도 채 안 되는 높이에 얼굴이 넓적하며, 다리를 포개고, 한국식으로 마치 기도할 때나 존경을 표시할 때처럼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은 모습이었다. 연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외관으로 보면 1천 년은 더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사당은 약 90년 전 일제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전해진다. 좌상은 완전히 부서져  황량한 계곡 사이로 굴러 떨어졌다. 천왕봉 남쪽 끝부분에 자리한 천왕사의 애버트 스님에 따르면, 1970년대에 나쁜 인간들에 의해 일제가 박살한 좌상을 계곡으로 버렸다고 전했다. 애버트 스님은 좌상의 잔해물을 찾기 위해 험난하고 빽빽한 숲으로 뒤덮인 협곡을 수차례 뒤졌고, 10년 이상 시간이 걸려 마침내 1987년에 복구했다.

▲ 아주 우수한 고대 산신 그림이 항상 여산신의 모습만 띠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산신 그림이다. 단군 시조의 모습과 도교적 상징인 구름 모자와 대머리에 어깨 위에 새를 앉혀 여러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좌상의 보안을 위해 사찰 안에 큰 바위들로 보호하고 있으며, 그 앞에 기도드리는 장소를 마련했다. 경남도에서는 조사를 통해 이 복구된 좌상이 진품임을 확인했고, 도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한 뒤 ‘지리산 성모’라 명명했다.

고대로부터 민속신앙은 천국과 지상의 통신수단으로 여겨졌다. 여산신에 대해 참고할 역사적 자료는 많다. 예를 들어 15세기에 한국의 지리를 조사한 동국여지승람과 20세기 초반에 쓴 불교역사, 15세기 후반 조선 시문학의 대가인 서거정의 시 전집 등이 그것이다.

2000년에 산청군청에서 지리산 천왕봉 성모할매 산신 조각상을 마련했고, 이것을 법계사 식당과 주요 주차장에 모셔 놨다. 시민들은 그들의 복을 얻기 위해 기도했고, 평화와 번창, 조국의 통일을 기원했다. 2001년 5월에 산신예배를 처음으로 열었을 때 이것들을 봤다. 아주 큰 비석이 동상 옆에 있었다. 여기에 조선일보 이규태 고문이 ‘여산신에 대한 동상’이란 제목으로 ‘삼국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은 지리산 여산신을 만들고 모셨다‘는 매우 흥미로운 내용의 비문을 새겼다.

▲ (1)2000년 산청군에 의해 새롭게 안치된 지리산 성모할매 산신상. 월간山에 소개됨으로서 아주 중요해질 것이다. /(2)지리산 내대천 동쪽 석천사 깊은 대나무숲에 샤머니즘 산신이 모셔져 있다. 작고 단순한 건물이지만 종종 놀라운 산신 작품들이 발견된다. /(3)긴 내대천 계곡 정상 부근에 산신 기도도량인 지림골 산신할매당이 있다.
또 다음과 같은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한국 샤머니즘의 전설은 이 성모가 한국 전통 민속의 조상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여덟 명의 딸들에게 군사기술을 가르쳤고, 그녀들을 8개 지방에 보냈다. 또한 모든 이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한다. 한일합병 동안 이 성모상은 일본의 여신들을 물리치는 역할을 감당했다. 천왕사는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14호로 지정되어있다. 2006년 8월6일에 기존의 그것보다 더 큰 동상을 만들어 국가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의 크고 웅장한 산봉우리를 국가의 선조 어머니라고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단군 왕검의 어머니라 여기기도 한다. 나와 같이 등산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는 한 방법으로 여산신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 글·사진 데이비드 메이슨 경희대 호텔관광학 교수·www.san-shin.org


월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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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 기운으로 한반도 영적 에너지 제공

여산신 이론에 대한 다른 이론은 계룡산 신원사의 묘봉 스님(조계종)이 제기한 것이다. 백두산에서 칠봉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주왕산, 단석산, 그리고 가지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뻗어내린 백두대간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산들엔 남성산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묘향산, 송악산, 삼각산, 수락산, 치악산, 계룡산, 속리산, 모악산, 지리산 등과 같이 한반도 중앙과 서쪽에 위치한 산들엔 여산신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 지난 2월 아침 남쪽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 1,915m로 남한에서 가장 높으며, 리더격 여성의 한 형태로서 여산신화 된 과정으로 보고 있다.(왼쪽) / 몇 십 년 전에 잃어버렸던 지리산 성모할매 산신의 고대 원래 동상이 지금은 법계사 입구 근처 천왕사에 안전하게 모셔져 있다.(오른쪽)
이 산들을 사이에 두고 지기(地氣)의 양극인 음양이 존재한다. 이는 한반도 전체를 조화롭고 더 발전하도록 기운을 북돋아 준다. 음양의 상호작용으로, 남산신과 여산신은 한반도의 영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모태가 되고 있다. 묘봉 스님의 이론은 세련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도 있다. 하지만 반론의 예들도 역시 제기되고 있다. 산을 예찬하는 이들의 이론과 주장들이 얼마나 다양하고 폭넓게 퍼져 있는가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적어도 지금까지 연구답사를 통해, 그리고 예술작품을 통해 다양하고 난해하게 묘사된 산신을 살펴봄으로써 특정 산에 존재하는 산신의 성별이 무엇인지 정의해 보았다. 지형학적인 특성에 따라, 풍수지리 전문가들에 의해, 혹은 무당이나 예술가를 통해,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형상에 의해 산신의 성별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에 있어 모든 요인들은 시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총체적인 의미로서 산신과 일반적인 수호신으로서 산신의 역할은 남자와 여자, 혹은 둘 다이거나 둘 다 아닌 무엇으로 구분 짓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산신을 신뢰하고 섬기는 한국인들에게 산신의 역할은 중요한 모순적 문제가 아니다. 아마도 자연신은 초월적이고 고정된 성 역할 이상이며, 언제든지 그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내대천 계곡 북쪽의 길상암 산신그림은 표준적인 불교 산신 모습을 띠고 있다. 이 산신은 마나님 같은 위엄을 보여준다. 불로초를 들고 있고, 동자와 화난 호랑이의 모습은 전형적인 한국의 산신 그림이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백두대간의 남단 종착지인 지리산 천왕봉(1,915m)의 산신령은 가장 중요하고도 영향력 있는 여산신이라 할 수 있다. 이 여산신의 이름은 지리산 천왕봉 성모할매 산신이고, 한국의 몇 안 되는 전통 수호신으로 손꼽힌다.

어떤 이들은 큰 봉우리를 한 명의 여산신으로 여기지만, 다른 학자들은 한 쌍, 즉 두 명의 산신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천왕은 남편, 성모할매는 그의 아내라고 하는 식이다. 어떤 절에는 한 쌍의 남녀산신의 탱화와 입상이 특색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남녀 한 쌍으로 이뤄진 지신을 조상대대로 믿고 있는 고대 중국의 도교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산신령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지리산 동쪽에 위치한 천왕봉과 서쪽에 위치한 노고단이 가장 영험한 여산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 같다. 반면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면서 중앙 가까이 있는 반야봉은 남산신으로 여긴다. 이러한 여-남-여의 산신구조는 음-양-음의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음양 조화의 개념은 몇 가지로 확대해 적용됐다. 북쪽에 있는 삼정봉은 여산신, 남쪽 봉우리인 삼신봉에는 남삼신을 가지고 있다.

월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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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신이 대부분…수락·계룡·지리산 동쪽에 보여
조선조 이후 유교 영향으로 남산신이 전체의 97%

가장 영험하기로 소문난 지리산 산신에 관한 고찰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산봉우리에 존재한다는 여자 산신령에 주목해 보고자 한다. 산신령의 성별(性別)에 대한 쟁점은 단순하게 설명되기 어려운 부분이어서 20여 년간 계속되어온 나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의문점은 풀리지 않았다.


▲ 현대적인 산신탱화에서 불멸의 여산신으로서 천왕봉을 묘사하고 있다. 한국에서 신성한 색깔인 흰 색의 엄청난 호랑이가 그녀를 호위하고, 양쪽 끝에는 원래의 호랑이가 지키고 있다. 그녀 뒤에는 팔도의 산을 대표하는 8명의 산신이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을 띠고 있다. 그들은 각각 인삼이나 다른 신성한 상징을 들고 있다.
지리산은 둥그렇게 둘러싸인 형세의 영향으로 지기(地氣)의 음(陰)에 해당하는 산이라 여겨지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설악산은 바위가 많아 험준하고 굳센 형상을 띤 양(陽)의 산이다.

그러나 산의 형세가 산신의 성별을 구분 짓는 건 아니다. 계룡산의 경우만 보더라도, 다른 많은 산들처럼 날카로우면서 굳센 형세를 지녔음에도 여신이 깃들여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산신이 고대로부터 여신이었고, 소수의 몇몇 산신만이 남자라는 것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 성스러운 어머니 상을 나타내는 천황사 산신 탱화. 남성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남녀 산신이 각각 한 마리씩의 호랑이를 타고 있지만 절대적인 역할은 나타내지 않고 있다. 이 탱화를 그린 화가는 불교와 샤머니즘의 혼합된 형태로 특징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는 남편으로서 천황산신과 부인으로서 성모산신을 보여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여산신(女山神)은 산각시, 산마수라, 산신할머니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300여 년간 만들어진 산신의 회화, 입상, 조각 등을 보면, 고령(高齡)의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사원이나 박물관에 소장 전시된 작품 중 97%가 할아버지 이미지를 풍기는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조선 500년을 지배한 유교와 권위주의 문화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수집해온 1,500장의 사진 중 여신이거나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는 것은 50점도 채 안 되는 3%일 뿐이다. 이들은 3개 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수락산, 대전 계룡산, 지리산 천왕봉 산자락이 바로 그곳이다.

▲ 내대천 중앙 부근 조그만 샤머니즘 암자인 청천암의 산신그림은 상대적으로 젊은 여산신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에게 산신은 마치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 여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산신을 여자로 간주해 매년 열리는 제사 의식에 앞서 일정기간 아내와 잠을 자지 않고 산신을 위해 밥을 짓는 선발된 남자가 모시는 것이 관례였다. 이것은 한국 샤머니즘의 성(性)의 상호보완성에 관한 통념이나 고대의 가부장적 문화에 대한 반향일지도 모른다. 영국 교수 제임스 그레이슨(James Grayson)은 한국 산신에 대해서 여산신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김회우 교수는 산신에 관해 몇 가지 특징을 개념화하려고 했다. 대부분의 남자 산신은 실제 존재하던 사람이 사후에 특별한 이유나 득도에 의해 산신이 된 경우라는 것이다. 반면에 여산신은 대부분이 본래 산신이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제시된 옛날 이야기는 내가 그동안 연구한 이론에 적용해 보면 사실과 다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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