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스승은 먼저 배운 사람, 先生의 의미밖에 없다.
참으로 슬픈 기억이다. 내게 스승은 나보다 먼저 배웠다는 선생(先生)의 의미 밖에 존경하고 고결한 아름다운 스승은 없다. 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 일인가.
삼박 사일동안 눈물을 흘려야 했던 내 아픈 기억을 짧게 적어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 중학교 3학년이 시작될 무렵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일 년 동안 공부를 쉬어야 했다. 입에 풀칠을 해야 했고 가을쯤에 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집안 사정이 회복됐다.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하고 싶어 어느 학교를 찾았고 교무실로 들어가 선생님께 물었다. “제가 공부를 하고 싶은데 가능하면 이 학교에서 청강이라도 할 수 있으면 받아주세요”라고 말을 했고, 어느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어린놈이 주제도 모르고 무슨 공부야? 여기서는 너 같은 놈은 받을 수도 없고 학생 신분도 아니라서 자리도 내줄 수 없으니까 그냥 집안일이나 거들어, 어린것이 겁도 없이 여기서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오다니 학교가 무슨 네 마음대로 올수 있는 곳인 줄 알어? 그냥 집에 가서 집안일이나 도우면서 살아라.” 등등 선생으로서는 어린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십 여분 정도 퍼부었다. 고개를 숙이고 그 말을 들으며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어금니로 입안을 물고 있었고 입안이 찢어져 피가 나오는 것을 삼키면서 들었다. 그리고 교무실 문을 닫고 나오는데 어느 선생님이 따라 나와서 하시는 말씀 “얘야 미안하구나, 옆에서 듣기가 너무 거북스러웠는데 선생님이 다 저 분 갖지 않으니 너무 서운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하시는 것이었다.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고 집으로 와서 삼일 동안을 식음을 전폐하고 눈물을 흘렸다. 짧게 설명했지만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내 가슴속에,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 후 나는 눈물을 잃었다. 아니 잃었다기 보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 후 내게 스승은 없었다. 아니 스승을 스승의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단지, 나보다 먼저 배운 선생(先生)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존경하는 스승님, 스승 앞에서는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는 말, 고귀하고 거룩한 스승 등등 이런 말들이 내게는 없다는 것이다.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내 눈물을 빼앗아 간 선생, 고귀한 스승의 존재를 앗아간 선생, 아름다운 배움의 참맛을 잘라버린 선생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는 존경하는 스승님을 가르친다. 선생님을 존경하라고 말한다. 내게 없는 스승의 참맛을 가지라고 말한다. 그 참 스승이 없다는 슬픈 기억을 만들지 말라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존경하는 스승님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만들라고 한다.
스승의 날,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선생들이 하루쯤 학생들에게 기억되는 날이라는 의미 밖에 없는 날이다. 나를 가르칠 나이에 있는 스승은 그저 나보다 먼저 배운 선생(先生)의 의미 밖에 없는 날인 것이다.
참으로 불행한 기억이다.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슬픔이다. 뼈가 시릴 정도의 어린 시절 기억이다. 이런 기억은 어느 누구도 가져서는 안 된다. 존경하고 고귀하신 스승에 대한 기억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선생이나 제자나 서로가 존중하는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혹 일어나는 선생과 학부형들의 불미스런 사건들 속에 자식이, 제자가 스승을 기억하는 것이 나처럼 아름답지 못하다면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 하나가 실패한 것이다.
오늘 스승의 날에 스승을 생각하는 기억 속에 이런 아픔이 없었으면 한다.
존경하는 스승은 늘 우리가 마음속에 두어야 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 무식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