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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방송국은 광고비 수입을 많이 벌어들인다. 드라마의 인기가 바로 방송사의 수입과 직결되는 것이라서 드라마를 제작하여 방영을 할 때면 시청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드라마가 인기가 높아지면 연장 방영을 하고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단물, 쓴물을 다 뽑아 먹고 나면 “몇 년 후” 아니면 계절을 뛰어 넘으며 종영을 서두른다. 이미 시청자들에게 뽑을 것은 다 뽑아 먹었다는 것이다.


오늘 끝낸 드라마 “아현동 마님”이 시청자에게 보여준 것은 홈드라마가 아니라 찝찝한 결말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작가의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서 조기 종영을 한다고 하지만 드라마가 주었던 내용은 전반적으로 홈드라마가 갖는 사회적 통념이 무너진 드라마였다는 생각이다.

‘아현동마님’은 처음부터 끝나는 날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드라마였다. ‘무한도전’을 간접 비난했다는 논란과 중화요리 비하 논란, 시향이 성종과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날 갑자기 아버지 제라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결혼이 무산되는 극단적인 스토리, 14세 아래 손윗동서 숙영과의 호칭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는 내용, 아가의 입양이 작가의 억지였던 드라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드라마지만 10개월에 걸친 방영기간 내내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이기도 했다.


홈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 생활에서 오는 괴로움 내지 절망을 이겨내는 희망이 있는, 노력하고 인내하며 살다보면 웃을 날이 있다는, 서로가 위해주고 아껴주며 살다보면 희망 찬 미래가 있다는 그 결말을 좋아해서 즐겨 보는 것이다. 뻔히 들여다보이는 결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아름다운 결말에 자신의 괴로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이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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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이 뻔히 들어나면 어떠냐. 끝내 웃으면서 극이 종영이 되면 어떠냐.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결말이라면 드라마가 사회에 기여하는 공이 크지 않은가. 삼각, 사각관계의 애정행각이 사회적으로 불륜을 조장하고, 불륜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어 자칫 외도가 정당화 되어 애인을 두는 것이 유행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결국 그 부적절한 애정행각에 의한 극들이 사회를 불륜의 정당성을 합리화 시키는데 일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삼각관계의 애정 드라마를 주부들이 즐겨본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었다. 과연 그럴까?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드라마, 4개 밖에 안 되는 방송사에서 방송사 자체에서 결정을 내서 방영하는 극이니 어쩔 수 없이 봐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하는가?

삼각관계가 유행처럼 각 방송사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데 시청자들이 선택의 여지가 있느냐는 말이다. 선택을 시청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방송이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본다는 말이 맞는 것이다.


각설하고, 홈드라마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방송사와 작가, 방송의 주체가 되는 입장에서 꾸며가는 홈드라마가 사회 관념과 통념의 선에서 꾸며지기를 바란다. 내용이 억지처럼 보여 질 때,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구성으로 진행되어 갈 때 이미 그 드라마는 홈드라마로서 가치를 잃고 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아현동 마님”은 시청자들에게 시향커플의 해피엔딩을 보여줬지만 “혜나”의 위암 말기사망과 “혜나” 친엄마의 죽음을 암시하는 영정사진을 보여줌으로써 희망에 찬 홈드라마가 아닌 희망을 꺼버린, 시청자들에게 씁쓸한 절망을 안겨준 채 막을 내렸다고 봐야 한다.


방송사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만큼 홈드라마를 꾸며 나가는 소제가 어찌 됐든 그 결말은 다분히 행복하고, 다분히 희망적으로 종영했으면 한다. 인기가 있으면 연장방영으로 시청자들에게 단물, 쓴물 다 뽑아먹고 어색한 결말로 갑자기 끝내지 않았으면 한다. 제품이 문제가 있고, 제조회사가 소비자를 속인 것이면 불매운동을 벌이듯이 드라마도 너무 그러면 시청자들이 시청을 거부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빼먹을 것 다 빼먹고 더 이상 돈이 안 된다고 시청자를 “팽”시키는 마무리 태도는 고쳐지지 않으면 결국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팽”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사람들은 살기 힘들고 고단할 때 코믹적인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보고, 살기 편안하고 살만할 때는 다분히 비극적인 드라마나 영화를 즐겨보다.

지금은 살기 힘들고 고단할 때가 아닌가. 이런 때 방송사에서 만드는 희망에 찬 드라마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힘든 시절에 희망을 주는 것이야말로 드라마의 첫번 째 목표인 것이다.


- 무식한 -

posted by 개구리발톱